삶이 바쁘고 오늘이 버티며 내일을 걱정하며.. 잊고 있던 사랑 이야기 입니다.
#1 생리
몇 년도에 중학교를 입학했는지 기억을 더듬어도 헷갈리네요. 그걸 셈하기도 귀찮습니다.
친구들과 어울리고 게임기에만 빠져 있던 이주유(제 이름이라고 생각해 주세요.) 였습니다.
예쁜 여학생, 거리를 오가는 여자 등에는 관심도 없었습니다. '여자친구가 있으면 좋겠다' 라는 생각 자체가 없었습니다.
중학교 3학년,.
부모님과 떨어져 고모네 집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전학을 했어요. 경기도 안양.
집구석이 돈 때문에 힘들었고 고모도 힘들게 살고 있었습니다. 단독주택의 지하실.
고모는 아무 말도 없었는데, 제 스스로 눈치를 엄청 보고 다녔죠.
학교까지 빠른 걸음으로 30분 정도 거리였습니다.
맨 날 똑같은 반찬에 미역만 가득찬 도시락. 아무 말도 못하고 용돈 하나 없이 학교를 걸어다녔습니다.
집 뒷쪽으로 한적한 골목을 지나 공원을 걸쳐 가는 길에 '그녀' 보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매일 저와 비슷한 시간에 한적한 골목과 공원을 지나 등교를 하더라고요.
저와 일정 거리를 두고 그녀가 앞에서 내가 뒤에서,. 어떤 날은 그녀가 뒤에서 내가 앞에서.
집에 돌아오는 길에도 어쩌다 한번씩 그 길을 일정거리 두고 오는 일도 있습니다.
얼굴을 가까이서 또는, 정면에서 본 적은 없지만 이뻤습니다.
단말머리였고 어느 교복인지는 모르지만 잘 어울렸고 걸음걸이도 차분했고..
몇 달이 지났습니다.
중학교 3년이 되었던 여름날 입니다.
학교에서 활발했고 친구들과 장난도 많이치고 나서고 나대는걸 잘했죠.
집에 돌아오면 고모 눈치는 보고 있어서 조용히 지냈습니다. 성격에 문제가 있는 사람처럼 조용했습니다.
어김없이 날은 덥고 교복 와이셔츠의 목줄 때는 찌들었고 몸에서는 땀 냄새가 풍기는 것 같은 날.
집으로 돌아가는 한적한 길에 그녀가 앞에서 걷고 있습니다.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교복치마는 회색 치마인데 엉덩이에 무언가 묻어 있더군요.
그녀와 저의 거리는 조금만 몇 발자국 달리면 닿을 거리입니다.
근데.. 이게 보니까.. 생리라는 느낌이 확 들더군요. 그녀가 모르는거 같아요.
냄새나는 와이셔츠의 단추를 풀어 벗었습니다. 안에는 반팔나시를 입고 있습니다.
오래 시간 그녀를 보았지만, 한번도 말을 해 본적 없는 그녀에게 달려가 어깨를 두드렸습니다.
저를 돌아 봅니다.
오랜 시간 서로의 길을 걸으면서 인사를 나눈적 없지만,. 서로에게 익숙한 사람이라서 그런지 놀라지 않더군요.
와이셔츠를 그녀의 허리춤에 손으로 밀어주면서,
" 엉덩이에 피가 묻었는데 이걸로 가려. "
" 네? "
" 그냥 너 생리하는거 같은데 옷으로 묶어서 가려. "
" 아... "
그녀가 당황합니다. 행여나 그녀가 창피해서 울거나 좌절? 그런것을 할까봐 전 아무렇지 않게 했는데,.
" 다른 사람이 볼까봐 그래. 그러니까 옷으로 묶어서 가려. "
" 네.. "
그러니, 그녀가 옷으로 어떻게 할지 모르고 있습니다. 엉덩이 쪽에 갖다 대고 당황하는 모습이 모습니다.
교복이 하복이라 소매가 없어 허리춤에 묶기가 불편하죠.
그래서 전 와이셔츠 아래쪽을 잡아서 그녀의 허리 춤에 대충 감아 주었습니다. 상황이 진짜 빨랐습니다.
"창피해 하지마. 나만 봐서 다행인줄 알어."
"...."
저는 뒤도 안돌아 보고 엄청 빠른 발걸음으로 집으로 갔습니다.
생리 때문에 창피해 할까봐서 쿨하게 사라져 드렸습니다.
그 첫 대면에도 그녀의 얼굴.. 그녀의 눈을 제대로 보지 못 했습니다. 저도 쑥쓰러워서니...
그렇게 집에와서 스스로에게...
'난 겁나 멋있었다. 죠낸 멋있다.' 를 외치면서.. ㅎㅎ
그리고 몇 일 그녀를 보지 못 했습니다. 날 피하는 걸 당연히 생각 했습니다.
비슷한 시간에 등하교 코스는 같은데,. 열번이면 한 두번은 마주치지 못해도 계속 못 보니.. 피하는 거겠죠.
그나저나.. 그녀가 제 교복을 가지고 텼습니다. ㅠ.ㅠ
여름 교복 와이셔츠 하나를 이틀에 한번씩 빨면서 입고 다녔습니다.
고모 눈치를 보기 때문에 제가 빨래비누로 빨았거든요.
고모가 세탁기 돌린다고 가져오라고 하면 그때는 세탁기에 넣었지만...
#1 토요일
지금 학교는 토요일 쉬죠. 제가 다닐 땐, 토요일 12시 30분? 쯤 학교 했습니다.
아직도 기억합니다. 그 날이 토요일 였다는 것을,.
토요일은 학교를 마치면 친구들과 어디서 지랄을 떨다가 집에 왔는데,. 그날은 친구들과 안 어울리고 집으로 곧장 오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돌아오는 길에 공원에 들어갔습니다. 평소엔 이 공원 잘 안 갑니다. 그날 따라.. 이상하게..
공원에서 혼자 무얼하려고 했는지 기억나지는 않지만, 혼자 텅빈 공원에 있었습니다.
공원은 작지만 시소, 그네, 미끄럼틀은 있었습니다. 날씨는 매우 좋아고요. 동네는 한적합니다.
누군가 공원으로 걸어옵니다. 여자 입니다.
이 동네 주민이 지나가는거라 신경 쓸 필요 없습니다.
지나가는 여자를 쳐다보고 있는 것도 왠지 모르게 쑥쓰럽고 창피하고요.
공원에서 내가 무얼하고 있는지 기억이 안 납니다.
"저기..."
절 부릅니다. 여자를 쳐다 봅니다.
"넵."
"그때 고마웠어요."
"아~~ 네...."
처음 그녀의 얼굴을 가까이서 제대로 보았습니다.
제가 생각했던 것 만큼 예쁘고 말투도 좋아서 괜히 쑥쓰러움이 밀려왔습니다.
그 감정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저는 그녀를 생각해서 아무렇지 않은 듯,.
"괜찮아요. 저는 다른 사람들이 볼까봐 그랬는데 제가 그런것도 창피해 할까봐 고민 많이 했어요."
"아~ 네~ 고마웠어요. 몰랐어요...."
"생리하는거 몰랐어요?"
"네..."
지금 생각하면 무슨 똘끼가 있어서 그걸 계속 파고 들었는지... 장난기인지 잘난척인지 계속 그 얘기를 했습니다.
"여자 생리하면 모르나...?"
".... 저도 처음이라.... 쫌..."
"아프다던데..."
"......"
"제가 여자가 아니라서.. 그게 모를 수도 있구나.."
"....."
지금 생각하면 그녀는 용기를 내서 나에게 감사 인사를 한 것이다.
서로 모르는 사이의 사춘기 소년, 소녀가... 여자의 생리를 얘기하다니..
그녀와의 인연을 이어가고 싶었는지, 나는 그녀에게 웃음을 안겨 주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내 교복은?"
"그거 버렸어요."
순간 나는 말을 놔 버렸다.
"나 교복 없어서 이거 맨날 빨아 입는데. 돈도 없는데. 이거 냄새 나는데."
그녀가 미소를 띄운다.
"교복 하나 사 드릴게요. 세모네모 중학교 교복이죠."
"넵. 95 사이즈."
"다음에 만나면 사서 드릴게요."
웃으면서,.
"됐네요. 그냥 한 말이니까 신경쓰지 마세요."
"사서 드릴게요. 그럼.."
"네."
그렇게 우리는 짧게 인사를 나누고 헤어졌다.
##1 3일 후
주말을 보내고 내심 기대했지만 월요일 등교길에.. 그리고 하교길에 그녀를 볼 수 없었다.
고맙다는 인사를 주고 받았지만 창피한건 그대로 창피한 거겠지.
그리고 다음 날,.
"저기요."
집으로 걸어가는 길에 공원에서 그녀가 날 부른다. 나에게 걸어온다.
"하이~"
"안녕하세요. 여기 교복."
"엇,. 진짜 사 주셨네."
"네."
"난 그냥 한 말인데."
그리고 약간 어색한 몇 초가 흐른 뒤,. 아무말이 없어 나는 말이 이어갔다.
"아침에 학교 갈 때 종종 보는게 요즘 안 보이는게 창피해 하는거 같아서,. 창피해 하지 말고 가."
"그런건 아닌데.. 그게 좀..."
"창피해 하는거 다 알어. 그게 더 창피하다."
"네."
"아무튼, 교복 사준거 땡큐."
그렇게 난 새교복을 받고 서로 쿨하게 그녀는 평소와 반대편으로 갔고 나는 내 길을 걸어 집으로 갔다.
다음 날,.
아침은 언제나처럼 라면을 끓여먹고 등교길에 올랐다.
그녀다. 그녀가 걸어온다. 그녀가 걸어오는 길과 내가 합류하는 길이 가까워 그녀를 가까이서 마주쳐야 한다.
"하이~ 방가방가~"
나는 어짜피 마추친거. 어짜피 서로 인사는 나눈 사이. 자신있게 서로의 눈이 마주치자 마자 하이텔 통신언어 인사 외쳤다.
가볍게 고개를 숙여 나에게 인사를 보내왔다.
가까이 걷게 되었는데,. 예전처럼 쑥쓰러워서,. 여자라서,. 내 걸음을 빠르게 또는 느리게 거리를 두고 걸을 필요가 있을까?
"야. 너 이렇게 아침에 보믄 그냥 같이 걸어가자."
"....."
"싫으면 말해. 서로 대충 아는데 떨어져서 가는것도 어색하고 같이 가자니 그것도 어색하고."
"...."
"안 그냐?"
"....."
그녀가 느닺없이 어깨로 나를 툭 친다.
앗! 우리가 이렇게 친하던 사이인가? 짧게나마 기분이 좋다. 왠지 친해진거 같다.
"왜쳐. 말로하지."
나를 계속 쳐다보며 걷고 있다. 무슨 할 말이 있는건지.. 싫다는 건지.. 좋다는 건지.. 알 수가 없다.
"왜? 싫어? 좀 그런가... 알겠다. 니가 싫으면 내가 빨리가든 늦게 가든.. 하지. 근데,. 그거 난 왜 더 이상하지. 아는데.. 모른척 해야하고.."
"저기..."
"응? 말해. 니가 하자는 대로 할게."
"나 고등학생이야."
멘붕~ ㅡㅡ;
그렇게 처음 그녀와 나란히 걸었다.